해수어류

우리나라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양식업의 대상물은 1960년대까지 해조류, 굴, 우렁쉥이, 홍합, 피조개 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정착성(定着性)이고 주변의 해수로부터 먹이를 섭취하는 종류이므로 인위적으로 먹이를 공급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어류는 먹이를 공급해야 하고 관리도 어려운 점이 많으므로 양식업이 쉽게는 발전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에서의 해수어류 양식업은 일본의 어류축양업(魚類蓄養業)과 관련성을 가지고 출발했다. 즉,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돔, 방어 등의 치어를 잡아다가 기르는 축양업이발달했는데, 축양의 대상이 되는 치어들은 동중국해(東中國海)의 따뜻한 바다에서 산란되어 난류(暖流)를 타고 일본의 서북부 해안 내지 우리나라 남해안을 따라 동으로 이동하는 것들이었다.

이런 치어들은 아직 어려서 자체적으로는 원거리 이동 능력이 거의 없으므로 해류를 따라 흐르는 해조류 더미의 그물에 숨어서 이동을 하는데, 이 치어들을 잡아다가 해안에 설치해 놓은 가두리에서 기르는 것이 축양업의 기본 원리이다. 그런데, 이런 치어가 일본 근해에 많이 있기는 하지만 양에 한정이 있으므로 축양업자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것을 잡아서 공급해 주기를 요청해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1970년대 초에 박형균(朴炯鈞), 이재수, 신형범, 강현술(姜玄術)등이 산양면 만지도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치어를 잡는 방법은 처음에는 전문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고 연안에서 잡어를 잡기 위해 부설해 놓은 주복(삼각망) 같은 데에 잡히는 것을 수집하다가 차차 멸치를 잡는데 쓰는 챗배(焚寄抄網) 같은 것으로 직접 잡게 되었다. 어종은 주로 방어와 돔이었는데, 이들 치어는 잡은 즉시 수송하면 모두 죽어버리므로 이것을 일단 가두리에 가두어 안정을 시키고 1∼2주일 정도 먹이를 먹게 한 후(이 과정을 「먹이 붙임」이라 한다) 활어 운반선에 실어서 일본에 수출했었다.

이 과정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비로소 '고기를 기른다'는 개념이 싹트게 되고 기술적인 요점도 점차 알게 되어갔다고 한다. 이 무렵 우리나라의 어업은 근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장으로 확장일로에 있었기는 하지마는 일본은 이미 이때 「잡는 어업」의 한계를 느껴,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라는 슬로건으로 양식업에 열을 올리기 시작하던 시대였으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어류 양식에 관한 관심이 점차 높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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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진흥과 양식팀 (☎ 055-650-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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