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땅 통영을 소개합니다.
바다의 땅 통영을 소개합니다.
사량면은 통영시의 가장 서쪽 해역에 위치한 사량도(蛇梁島) 및 수우도(樹牛島)를 중심으로한 도서지역이다.
사량도의 옛 섬이름은 박도(樸島·撲島)였으며 고려시대에는 박도구당소(樸島句當所)가 있어 봄·가을로 관할 고 성수령이 남해의 호국신에게 남쪽변방의 보전과 함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망제(望祭)를 지냈었다.
조선초기 이 박도는 인접한 구랑량만호진(仇浪梁萬戶鎭)의 수군 및 병선의 초계정박처가 되었으며, 섬에 영전 (營田)을 일구어 병사틀이 내왕하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진영을 이곳 섬으로 옮겨 사량만호진(蛇梁萬戶鎭)이 설치되고 성종 21년(1490) 사량진성(蛇梁鎭城) 을 축성하여 비로소 진영의 위용을 갖추었다.
사량진은 임진왜란 때에 호남과 영남 해역을 잇는 조선수군의 중요거점이었으며, 그후 통제영이 설치된 이래 통영군창둔전(統營軍倉屯田)과 통영둔우(統營屯牛)의 방목처와 더불어 거북배(龜船) 1척, 병선(兵船) 1척, 사후 선(何候船) 2척에 장졸 합 216명 규모의 병력이 상주하며 이곳 해역을 지켰다.
행정구획상으로 사량면 지역은 조선초기 고성현 서하리(西下里), 그리고 후기에는고성현 하일면(下一面)에 각각 속했다.
그러다가 광무 4년(1900) 이 고장이 고성군에서 진남군으로 분군되면서 섬이름 「사량도」를 따서 진남군(鐵 南郡) 사량면(蛇梁面·巳梁面) 그리고 1909년 용남군(龍南郡) 사량면이라 칭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곳 사량면과 인접한 원삼면(遠三面, 지금의 욕지면 지역) 을 통합하여 「원삼면」의 「원(遠)」자와 「사량면」의 「량(梁)」자를 따서 통영군 원량면(遠梁面)으로 개칭 했다.
광복 후 1955년 원량면을 분면하여 옛 원삼면 지역은 욕지면, 그리고 옛 사량면 지역은 다시 종전의 사량면 으로 구획되고 최근 1995년 통영군과 충무시의 통합에 따라 통영시 사량면이 되었다.
「사량」은 크고 작은 두 섬으로 이루어진 「사량도」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조선초기의 사량도 지명은 「박 도」였으며, 두 섬은 「상박도(上樓島)」와 「하박도(下樓島)」, 이를 아울러 일명 「상하박도」라 칭했다. 한편 여기 두 섬 사이를 가로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세를 이룬 것에서 유래하여 이 해협을 사량(蛇梁)이라 일컬었는데, 당시의 수군진(水軍鎭)이 육지로부터 여기로 옮겨와 설치되면서 이 사량 지명을 따서 사량만호진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후 진영이 더욱 번성해지자 점차 원래의 섬이름인 「박도」 보다는「사량진」.「사량」 등으로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 결국 이러한 군영의 이름이 섬지명으로 전용되어 보편적으로 「사량섬」· 「사량도」라 칭하게 된 것으로 사료된다.
즉 「사량(蛇梁)」은 원래 두 섬 사이를 흐르는 해협을 일컬었던 옛 이름명에서 유래했다.
종래의 지명유래설에 의하면 이곳 옥녀봉(玉女峰)에 얽힌 비련의 설화에서 연유되어 「사랑(愛)」이 「사량」 으로 변천되었다는 설과 섬에 뱀이 많이 서식했다는 설, 그리고 섬의 형상이 뱀처럼 기다렇게 생긴 것에서 유래했다는 등의 민간어원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