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땅 통영을 소개합니다.
바다의 땅 통영을 소개합니다.
1931년 통영면에서 산양읍의 평림, 당, 인평, 미수, 봉평, 도남 등 6개 리를 편입하여 통영읍으로 승격하고, 1955년 충무시가 되면서 동(洞)이 되었습니다.
1995년에 충무시와 통영군을 통합하여 도농복합형태의 통영시가 되었습니다. 1998년에 당동, 도천동을 통합하여 도천동을 행정동으로 정하였습니다. 행정동인 도천동은 법정동인 도천동, 당동을 관할합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사이는 원래 실낱처럼 이어진 육지였는데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의 작전에 말려든 일본함대가 궁지에 몰려 밤에 이 육로를 파고 도주하였다. 그래서 이곳을 판데목이라 하여 한자표기는 착량(鑿梁)이다. 부근에 있는 충무공의 사당인 착량묘도 여기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통영반도와 미륵도사이의 수로를 확장하기 위해 원래있던 석교를 없애고 1932년에 길이 1,420m, 너비 55m, 수심 3m의 충무운하를 개통하였습니다. 1931년에 이운하 밑으로 길이 461m, 높이 3.5m, 너비 5m의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을 착공, 1932년에 완공하였습니다. 1967년에 길이 152m, 너비 10m, 높이 18m의 아치형 충무교가 운하위에 세워졌습니다.(출처 : 백과사전)
도천동은 옛부터 도릿골과 냇골이라 불려져 왔으며, 도릿골은 현재의 통영여자중학교 주변일대를 일컬으며, 지리적으로 남쪽을 향한 깊은 골에 위치하고 있어 기후가 온화하고 토질이 좋아 농작물재배가 발달하였으며,
냇골은 현재의 두룡초등학교주변과 한국통신이 위치한 주변일대를 지칭하였으며, 이곳 양편으로 큰내가 흐르고 있어 냇골 또는 천동으로 불러 오다가 두마을의 이름을 합하여 도천동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지난 1998.1.1 당동과 도천동의 행정동이 통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골짜기가 넓고 크다하여 한실이라는 마을과 지형이 남쪽바다로 길게 뻗어 내려와 끝이 패인 모양이 국자처럼 생겼다하여 국치 또는 국재로 와전되어 불리우는 국치 마을, 천수답이 계단식으로 형성된 골짜기에서 유래된 천대밭골이라 불리는 천대마을 우럭(우렁이 조개)이 많이 나는 포구하하여 우륵개라 불리는 우포마을, 옛 행정동리 명은 민점이었으나 그 후 민양으로 개편된 마을로 총 6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