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생가

김순철 / 통영시문화예술과

당초 충렬사 광장 앞에 건립하고자 했던 '박경리문학관'은 갑자기 선생께서 돌아가심으로써 박경리공원 주변으로 옮기고 명칭 또한 '박경리기념관'으로 바꾸어 2010년 5월 5일 2주기를 맞아 개관하였다.
박경리선생의 본적은 통영시 태평동402번지(통영읍 조일정 402)이며 태어 난 곳은 선생의 외가인 통영시 문화동 328-1번지(통영읍 대화정 328)이다. 현 명정동의 공덕귀 여사 집 건너편 집은 훗날 선생께서 이사하여 살 던 집이다.

김성우 선생님은 컬러 세계여행집에서 “ 세계의 큰 문학은 향토문학이었다. 우리가 애독하는 세계문학전집 속의 작품들은 거의가 작가의 고향이 무대가 되어있다. 고향 속에 세계가 있다. 세계의 큰 문학은 고향에서 시작되었다.”라고 했다. 한 위대한 작가에게 고향은 이처럼 큰 의미를 갖는다.

선생님의 단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소설 전체의 무대가 통영이다. 그 외도 파시, 토지 등 많은 작품들이 고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서울생활을 거쳐 원주에서 사셨지만 마음은 한 번도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는 선생님이시다.

원주와 하동은 박경리 선생님을 콘텐츠로 문화적 자산을 쌓아가고 있다. 심지어 선생님의 고향을 원주나 하동으로 착각하고 있는 국민들도 많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2004년 50여년만의 통영 방문을 계기로 박경리 선생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사업이 기획 실행되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도대체 통영이 어떤 곳이기에 그토록 수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배출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작가의 고향을 찾아 문학기행을 오는 이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지명 표석 몇 개 외는 마땅히 보여 줄 곳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지어진 '박경리기념관'이 그래도 문향의 체면을 세워 준 셈이다.

박경리 선생님의 문학적 뿌리를 찾아온 문학도들에게는 선생님의 생가 또한 꼭 둘러보고 가야할 곳이다. 그런데 박경리 선생의 생가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다. 선생님께서 태어난 그 암흑의 시기에 또 남존여비의 구분이 뚜렷했던 시기에 여류작가의 생가나 고향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결혼을 하면 본적까지도 남편을 따라가야 하는 여자의 일생에서 자신이 태어난 곳이 누구에게 기억될 수 있었을까. 이제 시대는 변했다.

선생님의 작품이 우리 통영의 이미지를 변신시켰다. 어느 분은 대하소설 '토지' 완간을 두고 "중화학 공장 10개 짓는 것 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제는 우리가 한 위대한 작가의 흔적을 찾아 기념해야 할 때다. 문학지도에 생가도 그려 넣고 소설 속의 지명도 그려 넣어야 한다. 이토록 문학의 향기가 철철 넘치는 아름답고 훌륭한 문학지도가 세상 천지에 또 어디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만들고야 말 문학지도의 어디에다 선생님의 생가를 그려 넣어야 할지를 몰라 나는 늘 안달했다. 경남 통영 출생이라는 기록 외는 선생님의 출생지를 정확히 표기한 연보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2002년 박태상교수가 쓴 '한국문학의 발자취를 찾아서'라는 책에서 조차 선생의 출생지가 충무데파트 뒤 시장 근처의 태평동인지 문화동 (대화정 32번지로 표기 함)인지 애매하게 기록하였다.

필자가 제적ㆍ호적부 등을 토대로 최근 통영을 찾은 박경리 선생님과 딸 김영주 선생님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선생님은 정확히 1926. 10. 28 경남 통영시 문화동 328-1번지(통영읍 대화정 328)에서 출생하였다.

현 문화주유소 맞은 편 서문고개(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서문고개'라는 표지석이 있음)입구에서 좌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마지막 집이다. 지금은 박경리 선생님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반 시민이 살고 있는 집으로 옛 모습은 찾을 길 없다.

흔적도 없는 선생의 생가를 찾아 어디에 쓰려고 그러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한 위대한 작가를 낳은 생가와 고향은 엄청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생가터가 정확하게 확인된 이상 생가 표석을 세우지 못할 것도 없다.

'박경리 기념관'과 더불어 '김약국의 딸들'에 나오는 지명과 생가터를 동선으로 연결한다면 이 얼마나 근사한 문학기행코스가 될 것인가.

단지 통영이 선생님의 고향이라는 것만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것이 더 자랑스럽도록 우리 모두 문화마인드를 키울 일이다.


담당자
박경리기념관 (☎ 055-650-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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