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물도 섬의 생김새가 군마의 형상을 하고 있어 마미도(馬尾島)라 불렸으며 경상도에서는 '아'를 '애'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어 매물도가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강한 해풍과 비옥하지 못한 농지 사정 때문에 메밀을 많이 심어 매물도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한자지명은 매매도(每每島), 후기에는 매미도('每'味島)와 매물도('每'勿島)로 표기했다. 이러한 '매', '미', '물' 등은 물을 의미하던 옛말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육지로부터 아주 먼 바다에 위치해 있는 섬이란 뜻을 지녔던 지명으로 풀이된다.
등대섬

등대섬

소매물도 등대가 있는 등대도의 본래 명칭은 해금도(海金島)였으나 등대와 어우러진 모습이 아름다워 2002년 국립지리원 고시에 따라 등대도로 지정되었다.
꼬돌개

초기 정착민의 역사가 스며있는 꼬돌개의 유래

꼬돌개는 초기 정착민이 들어와서 산 지역으로 대항마을의 남쪽지역이다. 1810년경 첫 이주민이 들어와 현재 꼬돌개라고 불리는 지역에 논밭을 일구어 정착하게 되었다. 이 지역은 기슭에서 물이 잘 나와 섬에서 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고 또 심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지형을 가지고 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야산을 개간하며 살아가던 초기 정착민들은 1825년 을유년과 1826년 병술년 두 해에 걸친 흉년과 괴질로 인하여 한 사람도 살아남지 않고 다 죽게 되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생존자도 없이 한꺼번에 '꼬돌아졌다'하여("꼬꾸라졌다"의 지역 방언) 꼬돌개로 불리게 되었다.
어유도

어유도와 매섬

매물도의 앞부분, 즉 당금 마을의 전면으로 어유도와 매섬이 자리하고 있다. 어유도는 ‘어리섬’이라고도 일컬어지며 유달리 고기떼들이 많이 몰려들어 바닷물이 말라버릴 정도였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풀밭에 누워 되새김질하는 염소처럼 바다 위에 엎드려 있는 형상의 어유도는 한 때 여섯 가구까지 산 적이 있으나 1976년 정부의 이주계획에 따라 현재는 무인도이다. 매섬은 어유도 앞의 자그마한 섬으로 어유도의 물고기를 노리는 매를 닮았다 하여 ‘매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글씽이 강정

진나라 서불이 남겼다는 글씨가 있는 글씽이 강정(글씨바위)

소매물도 등대섬 동쪽 해안 절벽의 글씨가 새겨진 동굴 암벽을 일컫는다. 오랜 세월 동안의 풍화로 인하여 지금은 겨우 그 흔적만을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이지만 불로불사약을 찾아오라는 진시황의 엄명을 받은 서불이란 신하가 한반도 남해안을 지나다가 그 절경에 감탄하여 글을 새겨 놓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70~80년 전에는 글자를 판독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데 지금은 흔적만을 찾아볼 수 있다.
남매바위

남매바위

짙푸른 망망 대 해상에 남북으로 길게 가로 누운 섬들, 큰 매물섬, 작은 매물섬, 등대섬, 그리고 옹기종기 떠 있는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매물도는 깎아지른 절벽과 기화요초,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등으로 절경을 이루고 있다. 큰 매물도 남쪽에 위치한 꿈과 낭만의 섬, 소 매물도 바닷가에 서 있는 남매바위에 얽힌 전설은 아름답고도 슬프다

매물도 방언

강정이란 이 고장의 방언으로 수많은 세월 동안 풍우(風雨)에 의한 풍화(風化)와 파도의 침식, 그리고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줄기에 암벽이 무너지고 패여 오목 들어간 좁은 개(浦)나 동굴을 말한다. 일 년 내내 파도가 거센 대해(大海)중에 자리하고 있는 섬이므로 파도의 침식으로 생성된 강정이 많다. "여"는 물속에 잠긴 암초를 말하고, 염은 물 위에 뜬 바위섬을 말한다.

접장(接長)제도, 육지로부터 접장 초청

생활이 점차 안정을 찾게 되자 마을 사람들은 후학들의 교육을 위해 1903년 서당을 세우고 후학양성에 힘을 쓰기 시작한다. 그만큼 매물도에 살던 사람들은 후학 양성과 교육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것이다. 이는 섬에 완벽히 정착하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육지에서부터 스승을 모셔왔는데 그들을 '접장'이라고 칭하였다. 접장들은 글을 가르치는 스승의 역할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 혼상제례 같은 길흉사의 절차 및 범절을 가르쳐 주는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접장 가운데 7대와 8대 접장은 섬으로 들어오던 중에 풍랑으로 인하여 모두 익사하는 사고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8대 접장을 모시러 육지로 갔던 마을 주민 4명도 익사 당하는 사고를 겪게 된다. 그리하여 접장의 전통은 9대에서 멈춰 버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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